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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NIKKI

230518_그것'도' 읽어야지(〈제 꿈 꾸세요〉_김멜라)

by 조토삼 2023. 6. 3.

최근 김멜라 작가의 단편 소설 〈제 꿈 꾸세요〉를 읽을 기회가 있었다. 동명의 단편집의 표제작이었다.

반쯤은 뜻하지 않은(읽어 보면 무슨 말인지 안다) 죽음을 맞은 주인공이 자기 시신을 발견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누군가의 꿈속으로 찾아간다는, 설정만 놓고 보면 아주 신선하지는 않은 소설이었다. 그러나 주인공이 목적지(부탁할 상대)를 결정하고 또 수정하는 과정에서 겪는 갈등이 내게는 퍽 와닿았다.

애초에 엄마에게 시신을 발견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동기로 떠난 여정이었다. 학창 시절 친구와 전 연인에게도 차마 부탁하지 못하고 돌아서고 말았던 주인공이 소설의 막바지에 이르러선 "제 꿈 꾸세요"라고 말하기 위해 그들 세 사람을 기꺼이 찾아간다. 소설은 그 과정을 유난스럽지 않게, 그러면서도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비평에 관심이 생기면서 책 말미에 으레 붙어 있는 해설도 읽어 보곤 한다. 덕분에 읽지 않은 다른 수록작들에 관해서도 내용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거의 모든 수록작에 레즈비언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작가는 여성 퀴어 서사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검색해 보니 관련 인터뷰도 있더라).

언제 어디선가 최근 한국 문단을 여성 퀴어 서사가 뒤덮다시피 했다는 우려를 읽은 기억이 있다. 제대로 된 기사나 논평은 아니었고, 그냥 인터넷 게시판의 푸념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현상이 실재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만약 그렇다면 오늘날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다양성이 시대정신이라면 그 첨병은 여성주의인 것 같으니까.

어쨌든 우려씩이나 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나는 적게 읽고, 또 그만큼 좁게 읽어 왔다는 새삼스러운 반성을 해 봤다. 그러다 문득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의 한 부분이 떠올라 책장에서 꺼내 읽어 봤다. 전에 읽으면서는 가볍게 넘어갔던 부분이었는데 이번에는 달리 읽혔다.

어느 날, 수업 이외에는 원체 말이 없던 선생을 찾아가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역시 마르크스를 읽어야 합니까?" "허허, 나에게 그걸 물으려고 왔습니까?" 선생은 연구실 문을 두드린 나에게 의자를 권했다. 선생은 대답했다. "마르크스'도' 읽어야지."

 

더 다양하게 읽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책은 김원영 변호사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