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외가 있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 눈알을 심고 준비하는데 학생이 코로나에 걸렸다고 연락이 왔다.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 도로 눈알을 뽑았다. 창밖에는 간밤에 내린 눈이 쌓였고, 냉장고에는 재운 고기와 샤브샤브용 모듬 채소가 있었다. 조금 이른 점심으로 나베를 끓여 먹었다.
식기세척기와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영화를 한 편 보기로 했다. 평소에는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고르다 질려버리기 일쑤인데 오늘은 마침 주호민 아저씨의 〈피노키오〉 리뷰 영상을 본 게 떠올랐다.
기예르모 델 토로라면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2017)을 재밌게 보기도 했고, '아동용 애니메이션'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2006)로도 유명한 감독이라 그가 피노키오는 또 어떻게 그려냈을지 궁금해졌다.
이 영화는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라고 불러 마땅하다. 꼭 디즈니 작품과 구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조금만 보면 이 사람이 아닌 다른 누구의 영화일 수 없다는 인상을 받기 때문이다. 도입부를 보며 나는 "코즈믹 호러 같다"고 했고, 친구는 "올해 본 것 중 가장 무섭다"고 했다.
기예르모 감독의 놀라운 점은, 결국 우리가 그 기괴한 나무 소년을 사랑하게 만들었다는 데 있다.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감독 특유의 미술과 호화로운 성우진의 목소리 연기야 말할 것도 없이 훌륭했지만, 감독이 설정한 구체적인 시대 배경("Obey"라는 명령과 파시즘만큼 어울리는 조합이 또 있을까!)과 "real boy"에 대한 독자적인 해석이 완성한 주제 의식은 그보다도 놀라웠다.
'쓰다 > NIKKI' 카테고리의 다른 글
230518_그것'도' 읽어야지(〈제 꿈 꾸세요〉_김멜라) (1) | 2023.06.03 |
---|---|
230228_죽변항, 마늘치킨오비광장/영등포구청 (0) | 2023.03.28 |
221209_사랑의 메커니즘 (2) | 2022.12.12 |
221125_〈헤어질 결심〉 대본집과 아이폰의 새 기능 (10) | 2022.12.08 |
221023_경남FC 대 FC안양 (0) | 2022.10.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