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상 어딘가에 꽂히면 만나는 사람마다 그에 관한 이야길 떠드는 편이다. 최근에는 영화를 두 편 봤는데, 두 편 다 맘에 들어버려서(그중 하나가 〈헤어질 결심〉이었다) 또 만나는 사람마다 영업을 하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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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2022)_박찬욱
10년도 더 된 새내기 시절, 대학에서의 첫 수업은 '사고와 표현'이란 필수 교양 수업이었다. 프랑스 현대 철학을 전공하신 듯한 교수님은 첫 수업에서부터 우리에게 과제를 내주셨는데, 〈데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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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난 아는 동생도 피해갈 순 없었다. 이 친구는 저도 뭔가 내놔야겠다 싶었는지 "형, 최근에 넷플릭스에 올라온 건데 보셨어요?" 하고 영화 하나를 추천해 주더라.
내용을 한 줄 요약하면 '여고생의 사랑과 우정'쯤 될 텐데, 다 커버린 주인공이 이제는 추억이 돼 버린 과거로부터 소포를 받고 그 시절을 돌아본다는 플롯을 택하고 있다.
보는 내내 눈이 즐거운 영화였다. 선남선녀가 나오기도 하고, 화면 자체가 몽글몽글하니 이쁜 색감이었다. 청춘 로맨스 장르에 어울리는, 여름 느낌이 난달까? 세기말이 배경이라 배우들도 그 시절 '느낌이 나는' 옷들을 입고 나오는데, 유행은 돌고 돌아 이게 또 촌스러워 보이지도 않더란 말씀.
언젠가 선생님이 "낭만주의는 과거에의 희구"라고 하셨는데, 다음 메일의 옛날 인터페이스며 비디오 대여점이란 배경까지(어쩌면 경주로의 수학여행도?),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를 자극하는 장치들이 가득하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낭만적이라고 할 만하다.
내용은 조금 아쉬웠는데, 특히 인물들의 매력을 잘 살리지 못한 점이 그랬다. 뻔한 전개도 장르적 특징이라 생각하고 부담없이 볼 수 있었고, 답답해 보일 수 있는 인물들의 모습도 그 나이대답다 싶어서 오히려 좋았지만, 주인공 나보라(김유정 분)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이 썩 매력적이지 않았다.
특히 나보라의 첫사랑 풍운호(변우석 분)는… 이 친구가 살아있는 사람인지 우리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요소를 뭉쳐 만든 화신쯤 되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키 크지, 잘생겼지, 눈은 우수에 젖어 있지, 자꾸 우산 까먹고 비 맞지, 사랑을 위해 두려움도 이겨내지, 영문 모를 거절에도 원망 한 마디 않고 기다려주지…
하긴 이 정도는 돼야 불멸의 첫사랑으로 남을 수 있겠다만, 군데군데 인물의 매력을 더할 만한 설정들이 없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았다. '나보라의 첫사랑'으로서만이 아니라 그 자체로 매력적인 인물일 수 있었을 텐데. 김연두(노윤서 분)나 백현진(박정우 분)도 마찬가지. 만약 이 영화의 장르가 '청춘'이라면, 이들 모두가 주인공일 수 있었을 텐데.
결말 부분은―스포일러의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자면―〈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2018)가 떠오르기도 했다. 다만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의 결말이 작중에서 내도록 복선을 깔아두기도 했고 영화의 주제에 '극적으로' 봉사한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던 반면, 이 영화의 결말은 보는 내내 느꼈던 아쉬움에 화룡점정을 찍는 듯했다. '나보라의 누구'로 아예 못 박아버린 느낌.
정작 김유정 배우 이야긴 하지 않았는데, 말해 무엇하랴. 이제는 '아역'이란 딱지를 뗀 어엿한 배우가 됐(겠)지만(사실 성인이 된 김유정 배우의 작품을 보는 건 이 영화가 처음이다), 해품달에서 봤을 때처럼 여전히 매력있고 연기 잘하는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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