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에서 누군가 인생 영화를 물으면 꼭 이 영화를 대곤 했다. 〈어바웃 타임〉(2013)이며 〈라라랜드〉(2016)며 지난 해 〈헤어질 결심〉이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까지, 그 뒤로도 좋아하는 영화는 늘어갔지만 그래도 인생 영화라고 하면 이 영화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영화라 이 영화를 대면 "그 영화 좋지." 하는 반응이 돌아오고 마는 게 보통이다. 그래도 가끔은 이유까지 이야기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면 항상 마지막 장면을 들곤 한다. (이 영화가 좋다고 하는) 다른 사람들의 이유는 들어본 적이 없지만, 어쨌든 나는 그 장면을 보고 이 영화를 사랑하게 됐다.
영화는 충동적으로 회사를 땡땡이치고 몬톡의 겨울 바다를 찾은 조엘(짐 캐리 분)이 머리를 파랗게 물들인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 분)을 만나면서 시작한다. 클레멘타인은 그 요란한 행색만큼이나 언행도 자유분방한데, 소심한 조엘은 다가오는 그녀가 부담스러우면서도 싫지만은 않은 기색이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진다.
화면이 바뀌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최근 사랑하는 연인 클레멘타인과 이별한 조엘은 화해를 위해 찾아간 클레멘타인이 자신을 아예 모르는 사람인 양 굴었다며 분통을 터뜨린다. 심지어 웬 새로운 남자 친구도 사귀어선 보란듯이 애정 행각까지 벌이더라고. 보다 못한 친구가 라쿠나라는 회사로부터 받은 편지를 건넨다:
클레멘타인은 조엘을 기억에서 지웠습니다. 둘의 관계를 언급하지 마세요.
결국 분을 이기지 못한―또는 더는 견디기 힘들었을―조엘도 그 시술을 받기로 하면서 영화의 서사는 두 갈래로 전개된다. 한쪽은 수면제를 먹고 잠든 조엘의 집에 찾아가 그 기억을 지우는 라쿠나 사 직원들의 이야기이고, 다른 한쪽은 시술 과정에서 클레멘타인에 관한 기억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조엘의 이야기이다.
만나는 일 없이 따로 진행돼야 했을 두 이야기는 사소한 기술적 문제와 직업 윤리가 부족한 직원들 탓에 간헐적으로 만났다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그 과정에서 조엘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떠올리고 만다. 그리고 클레멘타인과의 소중한 기억들과 마주하면서 끝내는 기억을 지우겠다는 결정마저 번복하기에 이른다.
이제 기억을 지키기 위한 조엘의 고군분투가 이어진다. 영문을 모르는 직원들은 이를 기술적 오류로 받아들이고 그의 기억을 지우길 멈추지 않는다. 영화 후반부 내내 조엘은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저항한다. 기억 속 클레멘타인이 "나와 상관없는 곳에 숨어서 아침까지 기다리자"는 발상을 떠올리자 그는 클레멘타인을 데리고 "창피한 기억" 속으로 달아난다. 누군들 그러기가 쉽겠느냐마는, 다른 누구도 아닌 조엘이기에 이 선택은 더 놀랍게 다가온다. 그만큼 그 실패도 더 안타깝게 느껴진다.
관계는 상호적인 것이므로 그 파탄의 책임을 누구 한 사람에게 물을 수는 없으리라. 그래도 우리는 조엘의 몫을 짐작해 볼 수는 있다. 그의 기억 속에서 클레멘타인은 스스로를 "열린 책"에 비유한다. 반면 조엘은 항상 끄적이면서 정작 그녀에게는 보여 주지 않는 일기로 비유된다. 클레멘타인의 요구는 간단하다: "너를 알고 싶어." 그리고 조엘의 응답은―그것이 얼마나 필사적이었든―너무 늦은 것이었다.
그래서 조엘은 기억을 지키는 데 실패하고 만다. 그의 기억 속 클레멘타인도 무너지는 기억과 함께 사라진다. 하긴, 후회는 언제 해도 늦다. 그 이름에 이미 때늦었다[後]는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엘의 발버둥은 정말 아무런 의미도 없었을까.
영화 막바지에 우리는 감독이 한 가지 서술 트릭을 숨겨뒀음을 깨닫게 된다. 이 장치는 자칫 영화를 허무의 수렁에 빠뜨리는 도돌이표처럼 읽힐 수 있지만, 이는 명백한 오독(誤讀)이다.
보라, 시술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완전하지는 못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몸의 기억 따위를 들먹일 필요가 있을까. 관계-맺음이란 행위의 본질을 돌아보는 걸로 충분하다. 관계는 변화다. 한번 관계를 맺으면 우리는 절대 그 관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소심한 조엘이 회사를 땡땡이치고 몬톡을 찾은 것도, 클레멘타인이―이미 검증된 방식으로 다가오는―새 남자 친구에게 위화감을 느낀 것도 바로 그래서다. 둘은 분명 처음과 마찬가지로 서로에게 첫눈에 반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뒤로도 처음과 같은 사랑을 하리라는, 그리고 그 끝에 처음과 같은 이별을 맞으리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감독은 내부 고발자의 손을 빌려 이들 연인을 두고 일종의 사고 실험을 진행한다. 기억에 없는, 그러나 틀림없는 서로의 목소리로 녹음된 서로에 대한 불만을 번갈아 듣곤, 애써 견디던 클레멘타인은 결국 조엘을 두고 돌아서고 만다. 마음을 정리하지 못한 채 무작정 뒤따라 나온 조엘에게 클레멘타인은 타이르듯 말한다.
"난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는 망가진 여자일 뿐이에요. 완벽하지 않다구요."
"지금 당신한테서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을 찾을 수가 없는걸요."
"그렇게 될 거예요. 곧 거슬리게 될 거고, 난 지루하고 답답해 하겠죠. 나랑 있으면 그렇게 돼요."
이에 조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한다:
Okay.(괜찮아요)
이 한 마디에 클레멘타인은 말문이 막혔다가 같은 말을 되돌려 준다: "Okay."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웃는다.
어쩌면 끝이 예정돼 있을지도 모르는데도, 괜찮으리라고, 서로에게 다짐하듯 말하며 웃는 그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우리가 지난날 실패한 뒤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져 돌이킬 수 있길 바라는 일이 비단 사랑뿐이랴. 그리고 우리가 간절히 바라더라도 뜻하는 바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일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내가 사랑하는 어느 책의 제목처럼―'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마지막 기억의 상실을 앞두고 이제 어떡할까 묻는 클레멘타인에게 조엘이 돌려준 대답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njoy it.(음미하자)
https://uncletokki.tistory.com/58
그녀(2013)_스파이크 존즈
군 복무를 마치고 C+이 가득한 성적표를 세탁하느라 방학도 없이 교양 수업을 듣던 시절이었다. 복학하고 보니 교양관 뒤에 웬 건물이 하나 새로 들어서 있었다. 방학 내내 오가다 보니 그 건물
uncletokki.tistory.com
〈그녀〉(2013) 감상문에서도―이동진 평론가의 발언을 인용하며―언급했듯이, SF나 판타지 장르의 매력은 그 초현실적인 설정이 작품의 주제 의식에 온전히 봉사할 때 극대화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터널 선샤인〉이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작중 라쿠나 사가 제공하는 '특정 대상에 대한 기억만을 제거하는' 시술이란 소재가 작품 전체를 지탱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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