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만나기 어려운 덴마크 영화다. 한국계 입양아인 감독이 한국계 입양아를 주연으로 한국계 입양아가 주인공인 영화를 찍었다.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낱말이 있다. 고대 그리스어에서 온 말로 원래는 파종播種, 즉 씨뿌리기를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여기서 파생한 "(본래 살던 땅에서) 흩어진 사람들"이란 뜻으로 쓰인다. 칼은 아주 어려서 덴마크에 입양돼 자랐지만, 그 출신(과 이를 드러내는 겉모습) 탓에 여전히 그 사회에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는 자연히 그가 태어난 곳, 한국에 끌린다.
떠나와 자리 잡은 곳에서 제자릴 찾지 못하고 헤매는 사람의 이야기니까, 이 영화도 마땅히 디아스포라 이야기라 할 만하겠다.
영화는 간단한 연출로 칼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칼은 자꾸 화면 밖에서 안으로 들어온다. 화면 안에서도 그는 이방인인 것이다. 반면 칼이 화면 안에 있을 때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칼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그와 닮은 이방인의 모습을 한 환영들밖에 없다(칼의 부모는 처음부터 그와 한 화면 안에 있다).
영화 속에는 화면 밖에서 안으로 들어온 존재가 하나 더 있다. 영화가 시작할 때 하늘에서 농장으로 뚝 떨어진 운석이다. 우리는 어렵지 않게 그것을 칼과 연결 지을 수 있고, 칼도 무의식적으로나마 그랬음이 틀림없다. 운석을 발견하고 주워와 깨끗이 닦아내는 칼의 모습에서는 기이한 열기가 느껴진다.
닦아낸 운석을 정작 침대 아래에 숨긴 것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무언가를 보이지 않는 곳에 두더라도 그것은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온 가족이 애써 외면하고 있는 그의 정체성 문제처럼. 과연 운석은 칼의 내면과 가족에 균열을 가져온다. 이런저런 일이 생길 때마다 그것은 집을 뒤흔들고, 끝내 벽을 갈라놓음으로써 그 균열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그 과정에서 칼과 그의 부모는 헤매고 다치지만, 그럼으로써만 얻을 수 있는 것 또한 얻게 된다. 친척의 인종 차별적인 발언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던 아버지가 친척의 멱살을 틀어쥐게 된 것도, 칼이 한국에 관심을 가질까 노심초사하던 어머니가 한국행을 제안하게 된 것도 모두 그 과정에서 그들이 얻은 것들이다.
그렇다면 칼이 얻은 것은? 언젠가 뱃속의 아이를 잃으며 겪었던 우울증이 도진 어머니가 운석이 갈라놓은 벽에 기대 주저앉아 있을 때, 칼은 어머니가 있는 화면 안으로 들어간다.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누군가 다가와 주기만을 기다리던 아이는 이제 누군가에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운석이 갈라놓은 벽지 안에는 그들 가족의 아픔이 숨겨져 있었고, 이제 그들은 그 아픔을 대면하고 함께 다음으로 나아갈 준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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