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자마자 치과를 찾았다. 사랑니를 뽑은 지 일주일이 돼서 실밥을 뽑아야 했다. 아래쪽 사랑니가 매복니라 작게 부숴가며 뽑느라 20분 가까이 씨름했더랬다. 다음날 그 상흔이라도 되는 양 아래쪽 교정 유지 장치가 떨어져 있는 걸 발견했고, 입안을 찔리고 긁혀가며 일주일을 버텼다. 그렇게 다시 찾은 치과였다.
실밥을 제거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예후도 생각보다 좋다고 했다. 치과 의자에 앉아 멍하니 진료 기록이 떠 있는 화면을 보다가 문득 내 치아가 위아래로 열두 개씩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양쪽 위아래로 난 사랑니를 몇 년에 걸쳐 다 뽑았고, 어려서 치아 교정을 하면서도 생니를 몇 개 뽑았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는 남해 차차웅―아직 정치 지도자를 왕이라 부르기 전의 일이다―의 사후 그 후계로 지목된 사위 석탈해가 남해 차차웅의 적장자 유리에게 자리를 양보하기 위해 내건 내기를 소개하고 있다. 말인즉슨, 예로부터 이[齒]가 많을수록 현명하다고 하니 각자 떡을 깨물어 잇자국이 많은 사람을 다음 차차웅으로 옹립하자는 것이다. 결국 잇자국이 더 많았던 유리가 아버지의 대를 이었고, 정치 지도자의 이름도 이 일화에서 딴 이사금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이다.
어디선가 읽기로 "이가 많을수록 현명하다"는 명제는 나이가 많을수록 이의 개수가 많다는 명제를 전제한 것이라고 한다. 즉, 살아온 만큼 더 지혜로워졌으리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가는 오늘날에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믿음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나이를 먹어갈수록 이가 줄어가고 있는데 그만큼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 돼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연말을 맞아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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