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출장이 잦은 형에게서 "이번에는 그리스에 가니 놀러와도 좋다"는 이야길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정말 떠나오게 될 줄은 몰랐다. 5월은 자격증 시험의 달이라, 달력을 꺼내놓고 아무리 테트리스를 해봐도 도저히 각이 나오질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4월 토익에서 썩 괜찮은 점수를 받고 5월 시험을 취소하면서 3주 좀 안 되는 시간이 생겼다.
말이 좋아 3주지, 당장 PCR 검사를 받고 떠나야 가능한 일정이라 내심 내려놓고 있었는데
닷새 뒤 비행기로, 심지어 가족 여행으로 규모까지 키워선 결정돼 버렸다.
현지에서 돌이켜 보니 20년 만의 가족 여행이었다. 그 추억을 사진 몇 장으로만 남기자니 아까워서, 무엇보다도 여행 중에 보고 듣고 느낀 바가 기억 속에서 흐려질까 겁이 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기록용인 셈이다.
그래도 공개된 플랫폼에 글을 남기는 만큼 '누군가 그리스 여행을 준비하다 이 글을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번 여행의 성격을 간단히 정리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선, 이 여행은 업무차 출장 중인 형의 초대로 시작한 여행이다. 이 여행의 장점도 단점도 대부분 여기서 비롯한다.
첫째, 우리는 형이 업무차 빌린 숙소와 차량을 이용할 수 있었다. 차량 렌트비야 젊은 배낭여행객에겐 좀 낯설 수 있지만, 여행 계획을 한번이라도 세워봤다면 숙소비가 예산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는 알 것이다. 덕분에 우리 가족은 여행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었지만, 그리스 여행을 준비하는 분들에겐 이 글이 큰 도움은 되지 못할 것 같다.
둘째, 형의 업무 특성상 현장이 외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우리 숙소도 관광지와는 관용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거리가 먼' 곳에서 구할 수밖에 없었다. 관광지라고 불릴 만한 곳은 차로 두 시간씩은 떨어져 있었고, 여행객이라곤 유럽의 이웃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특히 아시아인은 우리 외엔 단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
관광지와 멀다는 점은 분명 단점일 수 있지만, 적어도 우리에겐 큰 장점이었다. 부모님은 여행 경험이 적지 않으면서도 자유 여행이 처음이셨고, "그 나라 사람들의 문화를 경험하고 올 수 있겠다"며 들떠하셨다. 실제로도 그런 경험을 잔뜩 하고 계시다.
처음에는 영어도 잘 통하지 않는 곳에 부모님 두 분만 둘 수 없어서 함께 나섰지만, 지금은 두 분이서 버스를 타고 가까운 도시로 나가 식사도 하고 오신다.
다음으로, 이 여행은 가족 여행이다.
가족 구성원의 상황과 특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데, 예를 들어 우리를 초대한 형은 주중에는 출근을 해야 한다. 그러니 온 가족이 차량으로 함께 움직일 수 있는 건 주말뿐이다. 나 혼자라면 주중에 기차나 버스를 타고 어디 관광지에라도 다녀오겠지만, 60대 부모님과 함께인지라 계획을 신중히 짤 필요가 있다.
따라서 우리 가족 여행은 주말을 제외하곤 숙소가 위치한 작은 마을, 그리고 가까운 도시에서 친절한 이웃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이야기를 나눈 기억으로 채워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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