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릴 초대한 형은 주중에는 아침 일찍 출근했고 퇴근해서는 초저녁부터 잠들었다. 온 가족이 함께 여행할 수 있는 건 주말뿐이었는데, 마침 우리가 도착한 날(5월 1일)이 노동절이라 다음 날은 월요일인데도 대체휴일로 쉬는 날이었다.
워낙 급하게 오기도 했고, 계획과는 거리가 먼 성격이라 여행 계획은 하나도 세워두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누워 블로그 몇 군데를 살폈더니 그리스 여행은 남부로 떠나는 게 일반적이었고, 그나마 중부에선 올림포스산Όλυμπος, Olympos이나 메테오라Μετέωρα, Meteora 정도가 가볼 만한 곳으로 소개되고 있었다(우리가 머무는 북부는 다녀간 사람이 없더라).
그리스라고 하면 아테네나 산토리니 섬 정도나 들어본 우리도 아는 올림포스산은 주말을 끼고 제대로 다녀오기로 하고, 이번에는 당일치기로 메테오라에 다녀오기로 했다.
https://goo.gl/maps/VKgcEUB39UGdfcoe7
메테오라 · Kalabaka 422 00 그리스
★★★★★ ·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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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테오라는 그리스어로 '공중에 떠 있다'는 뜻이라고 하는데(출처: 유네스코) 기암절벽 위에 자리한 수도원으로 유명한 곳이다. 역사적으로는 중세시대에 수도사들이 불안한 정국을 피해 심산유곡으로 숨어들어 공동생활을 시작한 것이 기원이라고 한다.
전성기(?)에는 수십 곳이 있었는데 지금에 이르러서는 수도원 다섯 곳과 수녀원 한 곳만 남았다고.
숙소에서 메테오라까지는 차로 두 시간 거리였다. 여덟 시에 조식을 먹고 출발해서 수도원을 한두 곳 본 뒤 가까운 칼람바카Καλαμπάκα, Kalabaka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어느 수도원에 갈지도, 어느 식당에서 밥을 먹을지도 정하지 않고 일단 출발했다.
운전대는 35년 무사고 경력의 조소장님이 잡으셨다.
위 지도에서 보다시피 그리스 중부와 북부는 고지대인데(우리 숙소만 하더라도 해발고도가 300미터가 넘는다고 했다) 그나마 고속도로에서는 터널을 지나며 산을 가로질렀지만, 고속도로를 벗어나자 산비탈을 따라 구불구불한 길이 이어졌다.
어느새 산안개가 우리 발아래 깔렸다. 중간에 차를 세워두고 고도 측정 어플을 돌려봤더니 1000미터가 조금 안 됐다. 산맥을 넘어가는 중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산맥을 넘고 다시 완만한 길을 얼마간 달렸더니 저 멀리 메테오라가 보이기 시작했다.
수도원은 한 곳만 들르기로 했다. 이름부터 대大메테오로 수도원Ιερά Μονή Μεγάλου Μετεώρου, The Great Meteoron Holy Monastery으로, 이곳 메테오라에서 가장 큰 수도원이었다.
길가에는 어귀부터 차들이 줄지어 주차돼 있었고, 저마다 차를 댄 곳에서부터 산을 오르고 있었다. 우리는 차로 오를 수 있는 데까지는 올랐지만, 아예 산비탈 마을에서부터 걸어 오르는 관광객들도 적지 않았다(아마 대중교통으로 메테오라까지 온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계단이 제법 가팔랐는데 그나마도 관광지화된 20세기에나 지어진 것이지 그 전에는 승강기로만 오갈 수 있었다고 했다. 속세를 떠난 수도사들의 절개에 대한 감탄과는 별개로, 어떻게 저기다 수도원을 짓고 저들끼리 살아올 수 있었는지 궁금증이 생겼다.
그리스어를 모르고, 그리스정교는커녕 기독교 전반에 지식이 없는 우리 가족의 감상은 그 정도였다. 관광지답게 여행객도 많고 수학여행(?) 온 학생들도 여럿 있었던 걸로 봐선 기독교 문화권의 사람들에겐 더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았을지.
점심은 《꽃보다 할배》에서 다녀갔다는 양갈비 식당을 찾아두긴 했는데, 전날 (질긴) 소고기를 1kg이나 먹었더니 우리 가족 모두 고기에 물린 상태였다. 산을 내려가는 동안 구글 지도를 열심히 뒤져 평이 괜찮은 식당을 하나 찾았다.
https://goo.gl/maps/S1DzQMcULJkqq2T6A
Restaurant Meteora · Trikalon 2, Kalampaka 422 00 그리스
★★★★★ · 그리스 음식점
www.google.com
이름부터 메테오라 식당이고, 삼대인가 사대째 이어오고 있다는 근본 있는 식당이었다. 썸네일에도 보이듯 벽 가득 오래된 사진이 붙어 있는데 선대(!) 분들이셨다. 직원에게 물으니 "저분은 몇 대째 누구, 또 저분은 몇 대째 누구, 지금 카운터에 선 저 친구가 몇 대째" 하는 식으로 식당의 역사를 소개받을 수 있었다.
음식은 부모님이 바라시던 대로 '이 동네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주문하기로 했다.
여기에다 파스타도 하나 시켰지만 겉보기에 평범해서 따로 사진을 찍진 않았다. 속 채운 채소나 무사카도 맛이 괜찮았지만 강사장님 입맛에는 이 집 비전의 메테오라 샐러드가 가장 좋으셨던 모양이다. 직원을 불러 레시피를 대신 물어드렸더니 직접 만들기도 하시더란 뒷이야기.
돌아오는 길에는 산맥을 넘는 대신 둘러가서 고속도로를 더 오래 타는 경로를 택했다. 시간도 그리 차이가 나지 않았고, 요금은 한 번 더 냈지만 무엇보다 피로감이 훨씬 덜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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