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송년 여행 (2): 부산행
일어나서 가장 먼저 씻고, 다음 사람 씻으랬더니 다들 집에 가서 씻겠단다. 드러워야 하는데 부러웠다.
간밤에 내리기 시작한 눈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술도 많이 마셨겠다, 점심은 국밥이 마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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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화성시 송산면 송산포도로 60-6 (송산면 봉가리) https://kko.to/8e5mVaxxTr
소담순대국
경기 화성시 송산면 송산포도로 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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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을 구해 올라와 있던 후배 민종장도 이 자리로 불렀다. 셴짜이가 “씻지도 않았는데…” 하고 당황했으나 민종장은 사흘은 안 씻은 몰골로 나타나 형들의 체면을 살려줬다.
국밥집은 김치와 깍두기만 봐도 견적이 나온다.
국물 맑은 것 보라. 깔끔하고 개운한 국물이었다. 무엇보다 잡내가 안 나 좋았다. 내장순댓국을 시킨 셴짜이 왈, 내장도 부드럽게 잘 삶겼다고.
밥을 먹고 나선 그새 녹아 내리는 빗발을 뚫고 광명역으로 가서,
KTX에 올랐다. Thanks to Xianzai.
차 안에선 일기를 마저 쓰고 책을 마저 읽었다.
요 며칠 바오밥에게 선물받은 노르웨이의 숲과 새의 선물을 이어서 읽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두 작품 다 1969년이 배경이다. 두 나라 작가가 그리는 서로의 같은 해가 너무 달라서, 나란히 두고 읽는 재미가 있었다.
2호선 촌놈은 가파른 지하철 계단을 보면 부산에 왔단 실감을 느끼곤 한다. 이름부터 산이 들어가는 부산은 지하철역이 유난히도 깊다는 인상이 내겐 있다. 그래선지 지하철역 승강기를 애어른 할 것 없이 타는 것도 참 신기했던 일.
저녁에는 고향 친구들을 만났다. 지금은 다들 흩어져 사는데도 여전히 머릿수가 가장 많은 우리 동네서만 보다가, 올해는 부산 서면에서 모였다. 늘 차를 몰고 나오느라 술 한 잔 못 했던 외제용을 위해서였다.
4주 만에 이발을 했고, 드라이기의 열풍으로 누르고 스프레이로 굳힌 머리로 어색하게 나갔다. 이쁜 데다 살갑기까지 한 선생님의 스타일 제안은 그러나 죄송스럽게도 낯설게만 느껴졌다. 전 선생님이 늘 상대하시는 서면 깔롱쟁이가 아니에요…
크고 작은, 그리고 크든 작든 골고루 늙은 친구들과 (여린 빗발을 뚫고) 자리를 옮겨가며 떠들었다. 해마다 이야깃거리가 달라지는 게 참 재밌기도 하고, 아직 정체하지 않아서라 생각하면 다행스럽기도 하고.
나중엔 딴 데서 자리를 가지고 있던 호걸의 여자 친구까지 합류했다. 수수한 학창 시절을 보낸 우리는 요즘도 친구의 여자 친구란 존재가 낯설고 반가워서 호들갑을 떨었다(모쪼록 겁먹지 않으셨으면 한다).
외제용 술 마시라고 부산에서 모였더니 이번엔 순자가 차를 몰고 와 마시지 못했다. 그래도 호걸이 지극정성으로 순자의 콜라 수발을 들어서 밤늦게까지 그의 글라스가 마르는 일은 없었다. 호걸은 여자 친구를 모시고 장유로 돌아가야 했다.
호걸과 그의 여자 친구, 그리고 바오밥을 차례로 내려준 뒤 나와 순자는 우리 집으로 갔다. 부모님도 베트남 가고 안 계시겠다, 서늘한 거실에 앉아서 한참을 더 떠들다가 잠들었다.